전통과 문화의 산실 외고산옹기마을

옛 조상의 지혜와 슬기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전국 최대의 민속 옹기마을입니다.

서생포왜성

서생포왜성 사진

동남해안을 중심으로 쌓은 일본식 성 서생포왜성을 소개합니다.

서생포왜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해인 1593년(선조 26년) 5월부터 일본장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지휘하여 돌로 쌓은 16세기 말의 일본식 평산성이다. 회야강 강구의 작은 포구를 끼고 해발 133m 고지의 산정(山頂)에 내성(內城)을 쌓고 동쪽 경사면을 이용하여 복잡한 구조의 2단·3단의 부곽(副廓)을 두었으며, 그 아래로 산 아래까지 점차 길고 넓어지는 외성(外城)을 배치하였다. 성벽 밖에는 2, 3중으로 호(壕)를 둘렀다.

성곽의 전체면적이 호를 포함하여 46,000평에 이르고 호를 제외한 성 외곽부의 길이가 약 2.5㎞, 평면상의 직선거리는 동사 약 870m, 남북 약 370m에 달해 남해안 각지에 산재하는 왜성 가운데 가장 웅장하다. 현재 산정에는 높이 약 5m의 천수대(天守臺)가 남아 있으며, 성의 내외부에서는 다수의 우물터가 확인된다. 성벽은 외성(外城)의 경우 바깥쪽에만 돌로 쌓는 내탁식(內托式)으로 하고 내성(內城)은 안과 밖 모두를 돌로 쌓는 협축식(夾築式)으로 축조하였으며, 기울기는 지면에서 60° 내외이다.

1594년(선조 27년)부터 사명대사가 4차례에 걸쳐 이곳에 와 평화교섭을 하였으며 많은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1598년(선조 31년) 명나라 마귀(麻貴) 장군의 도움으로 성을 되찾았고, 1년 후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53명의 충신들을 배향하기 위해 창표당(蒼表堂)을 세웠으나 지금은 파괴되어 터만 남아 있다. 서생왜성은 임진왜란 직후부터 1895년까지 약 300년 동안 조선 수군(水軍)의 동첨절제사영(同僉節制使營)으로 사용되었다.

서생포왜성

  • 지정 번호 :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8호
  • 시대 : 조선시대

찾아오시는 길

  • 주소 :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서생3길 주변
  • TEL : 052)229-7642~7643 (문화관광과)

대중교통 이용시

  • 시외고속버스터미널에서
    (715,1715)번을 타고 서생포왜성앞 버스정류장에 하차